RTS 펠리&만쥬 여행 TALK :: '세계3대미제사건' 태그의 글 목록

안녕하세요 사회 이슈 TALK의 펠리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정보는요.

핀란드에서 일어났었던.

가장 기괴하고 미스터리 한 영구미제 살인사건.

일명 보돔호 캠핑장 살인사건입니다.

과연 어떤 사건일까요?

바로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건은 핀란드에서 캠핑족과 캠핑장으로 유명한.

보돔호수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1960년 6월 4일 4명의 아이들이 보돔호수로 놀러 옵니다.

이 4명의 아이들은 새벽 늦게까지 놀았고.

호수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6월 5일 이 호수에 놀러 온 소년 2명이.

산책하던 중 우연하게 위 4명의 아이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와.

그 옆에 피로 얼룩져서 뭉개진 텐트를 보게 됩니다.

텐트 밖으로 발이하나 삐져나와 있었고요.

그 튀어나온 발하나가 4명의 아이들 중 유일하게 생존하게 된 1명의 아이입니다.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살아있었던 생존자를 보고.

2명의 목격자 소년들이 인근 경찰서에 바로 연락했고.

경찰들은 바로 텐트로 달려와서 텐트 안에 참혹하게.

살해되어있는 3명의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3명의 사망자 중 한 명의 아이는 칼로 무려 15방이나 찔린 상처가 있었고요.

텐트는 바깥에서 안쪽으로 찢어진 흔적이 있었습니다.

범인이 강제로 침입해서 아이들을 살해했다는 거죠.

그리고 이 사건에서 이상한 점은.

4명의 아이들의 소지품은 텐트 안에그대로 있었는데.

2명의 아이들의 신발은 사건 현장에서1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고.

남자아이들의 재킷만 사라지고 전날 여자애들이 밖에 걸어둔 옷은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그날 살인사건의 4명의 아이들이다.

그중 닐스 구스타프손만이 이 사건에서 유일하게 생존자이다.


닐스라고 편하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경찰들은 목격자를 찾기로 합니다.

워낙에 유명하고 이였고 근처에 해수욕장도 있어서.

목격자를 금방 찾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보돔호수는 매우 엄청 깊숙한 곳에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호수 건녀 편에 사는 여자 2명과 남자 1명이 증인으로 나타났다.

여자 2명과 남자 1명은 야영지 쪽에서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고.

이 3명은 모두 똑같은 진술을 하게 된다 금발머리의 남자를 보았다고.








그 외에 범인에 대한 별다른 증언이나 증거조차 없었다.


경찰들은 이렇게 범인에 대한 흔적은 금발머리 남자인 것밖에 모르게 된다.

하지만 핀란드에 금발머리 남자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범인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알고 있다시피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이 사건의 생존자 닐스가 있다.

경찰은 이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닐스에게 범인에 대해 물어봤지만.

닐스는 이 사건에 대해서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풀어낼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유일한 희망인 닐스조차 기억을 하지못하는 상황이니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아보잔 생각으로.

좀 비도덕적이지만 닐스에게 최면술을 감행합니다.








그렇게 닐스는 최면술에 빠지고 최면술에서.

닐스는 금발머리의 남자가 쇠 파이프를 들고 텐트를 찢고 들어와.

자기들을 공격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 외에 정확한 범인의 얼굴이나 신체 특징을 알아내는 데는 실패합니다.

부족한 증거로 악전고투를 벌인 경찰들은 그래도.

유력한 용의자 3명을 추려냈습니다.





1. 한스 아스만

이 사건의 정말 강력한 용의자로 올라왔습니다.

일단 그는 금발머리 소유자였고요.

보돔호수 근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 한스 아스만은 핀란드 사람이 아니라 독일인입니다 )

강력한 용의자로 선택된 이유는.

그는 이 살인사건 다음날 외과병원에 방문하는데.

손톱에는 때가 더럽게 끼어있었고.

흰 셔츠에 피로 보이는 붉은색 얼룩이 사방에 묻어있었습니다.

그날 병원 의사는 이 한스 아스만이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라고 엄청 주장합니다.

또한 핀란드 경찰들 또한 이 한스 아스만이 다른 살인사건의 용의자라고까지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스 아스만에겐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한스 아스만은 사실 부인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는데요.

이 사건 당일 간통하는 불륜녀와 집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는 겁니다.

불륜녀와 둘이 입을 맞춘 거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사건 당일 불륜녀 집에서 파티를 열었고.

그날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전부다 한스 아스만을 파티에서 봤다고.

증언했고 한스 아스만은 알리바이가 성립되어 풀려납니다.

그리고 그가 필리핀 사람이 아니라 독일인이어서.

더욱더 천대받았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2. 칼 발데마르 윌스트룀

두 번째 강력한 용의자 칼입니다.

칼은 보돔호수에서 매점을 운영했는데요.

캠핑족을 정말로 증오했습니다.


과거에도 캠핑을 온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룬 전과가 있습니다.

그가 용의자로 오른 이유는 이 살인사건 직후.

자신의 집 우물을 메워버렸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칼의 집을 조사했지만 흉기로 보이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칼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르고.

무기를 우물에다 메워버린 것 같다고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칼 또한 알리바이가 있었는데요.

그 살인사건 당일 아내와 함께 있었다는 겁니다.


 알리바이가 입증되어 풀려났지만.

9년 뒤 칼은 보돔호수에 빠져서 죽게 됩니다.

그리고 칼이 죽자 아내는 남편이 자신에게.

알리바이 조작을 부탁받았다 진술합니다.








그리고 칼의 술친구 또한 칼이 술에 취하면.

자기가 그날 호수에서 아이들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범인으로 확정이 되나 싶었지만.

칼은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출전 용사로.

전쟁 당시 머리에 엄청나게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 이후로 칼은 평상시에도 자기가 생각하지 않은 말을 하는 병이 생겼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죠.

이병 땜에 용의선상에서 다시 배제되었습니다.





3. 닐스 구스타프손

세 번째 강력한 용의자.

보돔호수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닐스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04년 재수사를 진행했고.

경찰들은 현장의 혈흔을 통해 닐스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둡니다.

사실 그날 살인사건 당일 닐스와 세포는 큰 말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술에 취한 닐스가 마일리를 강간하려 했던 게 밝혀집니다.


그에 세포가 마일리를 지키기 위해 닐스와 몸싸움을 하다가.

이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살해 동기까지 일목요연해졌다.

2005년 닐스는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에 닐스는 " 일은 이미 벌어졌고 저는 15년형을 받겠네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공식 문서에 적힌 게아니라 수사관의 기억으로 나온 말이고.

닐스가 15년형을 받는다는 말이 살인으로 받는 건지 그날 강간죄로 받는 건지.

매우 애매한 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닐스가 범인이라고 단정 짓기힘든 이유가.








닐스가 그날 생존되었을 당시 닐스 또한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닐스는 현장에서 구조되고 약 6~7주를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했다.

자기 자신의 머리를 그 정도로 쌔게 때린다는 게 가능한가?라는 의견입니다.

또한 닐스와 세포의 신발은 살인사건 현장에서 1km 떨어진 곳에서 발견했는데.

닐스가 범인이라면 살인을 하고 맨발로 1km나 걸어와서 몽둥이로.

자기 머리를 6~7주나 혼수상태로 입원할 정도로 내려치고 기절했나?

그리고 몽둥이로 자기 머리를 내려쳤다면 그 몽둥이는 어디에 있나?

그리고 사라진 아이들의 의류품은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닐스 또한 무죄로 풀려나게 됩니다.

2018년을 기준으로 이 사건은 58년 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았고.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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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회 이슈 TALK의 펠리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정보는요.

무섭고 섬뜩한 이야기인데요.

미국 국민 중에서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강호순 사건 같은 매우 유명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기괴하고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드는.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존 베넷 램지입니다.

매우 이쁘게 생겼죠?

이 아이는 집에 방이 무려 15개나 있는 부유한 집안의 딸입니다.

존 베넷의 어머니 또한 뛰어난 외모를 가졌고.

램지 또한 엄마의 뛰어난 외모를 물려받아 엄청 이쁘게 생겼죠.

엄청난 자산가의 딸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태어난 딸.

일명 금수저라 불리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은.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 불리며.


미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아동 살인사건의 남게 됩니다.








199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이웃집 부부의 자택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 다녀오는 램지 가족.

모든 파티가 끝나고 자기 자신의 집에 존 베넷 램지.

램지는 지쳐서 잠들었고 지쳐서 잠든 램지를 아빠가 안아서.

램지의 방안에 들어가 램지의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 나옵니다.

이것이 존 베넷 램지의 마지막 모습이 됩니다.

다음날 아침 자택 계단에서 한 장의협박문이 떨어져 있었고.

존 베넷 램지는 실종됩니다.




협박 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외국인 소규모 집단입니다.

당신의 딸을 납치했습니다.

딸을 무사히 돌려받고 싶으면 11만 8천 달러의 금액을 준비해라.

돈의 전달 방법은 다음날 오전 8시~오전 10시 사이에 전화로 알려주겠다.

만약 FBI나 경찰에 신고할 시 딸의 목을 잘라버릴 것이다.

돈이나 돈 가방에 위치 추적장치를 달아도 딸은 죽을 것이다.

우리는 국가 수사관의 수사 진행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이 편지를 본 부부는 무서웠지만 그래도 경찰에 신고했고.

편지에 지문이나 어떠한 증거도 남아있지 않아서.

경찰들 또한 협박 문의 내용대로 전화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경찰은 평소 조사하지 않았던 집안을 구석구석 조사하다가.

경찰 과 램지의 아버지가 집 지하실에서 램지가 평상시 아끼던.

하얀색 담요에 덮인 채 입에는 강력접착제가 붙어있고.

두개골에는 금이 간 상태, 얼굴은 구타를 심하게 당해 멍이 들었고.

나일론 끈으로 목이 심하게 쪼여서 목이 쪼그라질 정도의 상태.

손에는 하트 모양 무늬가 그려져있는 끔찍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은 수상한 점이한두 개가 아닙니다.


협박문은 존 베넷 램지의 집 볼펜으로썼습니다.

게다가 밤이어서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집안의 손전등까지 이용했습니다.

램지의 시체는 집안 지하실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가짜 협박문을 만들어놨을까요?








그리고 보통 범인이 계획하고 집에 들어온 거라면.

손전등을 챙겨서 들어오는 게 상식적인데.

집안의 볼펜과 손전등을 이용했습니다.

자칫하다가 증거가 남을 텐데 무슨 이유였을까요?

심지어 존 베넷 램지 집의 손전등은 건전지가 없었는데.

범인은 이 건전지를 챙겨 온 걸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램지가 사망한 당시에 눈이 정말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존 베넷 램지 집안에서 마당에서 그 어떤 곳에서도.

외부인의 출입이 전혀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눈이 오는 날이면 어떠한 증거라도 남아야 하는데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협박문에 11만 8천 달러를 챙겨오란 협박문이 있었는데.

이 금액은 램지 아빠의 회사 보너스 금액이랑 정확히 일치합니다.


존 베넷 램지 집안은 엄청난 부자집인데 왜 굳이 11만 8천 분을 요구했을까요?

그리고 램지의 시신에서 램지가 엄청나게 저항한 흔적이 나옵니다.

왜 굳이 범인은 램지를 납치한 게 아니라 집안에서 살해했을까요?

램지가 저항하거나 소리치면 들켰을 확률이 엄청 높았는데요.


그리고 범인은 램지의 손에다 하트 무늬 모양을 그리고 나갔는데요.

미국에서 어린아이 손에다 하트 무늬 모양을 해놓는 건.

소아 성애자들만 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는 가족들로 주목됐습니다.

그 이유는 외부인의 출입 흔적이 전혀 없었고.

범인의 램지 집안의 물건을 이용해서 편지를 쓰고 증거를 남긴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램지의 아버지는 램지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램지의 어머니는 램지의 미모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살인했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다행히 램지의 시신에서 램지의 손톱과 램지의 속옷에서.

범인이 남긴 DNA가 발견됩니다.








하지만 1996년에는 DNA를 가지고 범인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의 증거 또한찾아낼 수 없었고.

2003년이 돼서야 DNA를 대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생겨납니다.

가족들은 7년 동안이나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살았고.

2003년 DNA를 비교해서 존 베넷 램지 가족들이 범인이 아니란 걸 밝혀냅니다.


그리고 이 램지가 남긴 DNA에 일치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고.

이 사건은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미국 전역의 국민들은 존 베넷 램지를 너무 불쌍하게 생각했고.

존 베넷 램지를 추모하고 그의 명복을 전 미국 국민들이 추모했습니다.

하루빨리 범인이 잡혀서 마땅한 죗값을 치렀으면 합니다.

이상 여기까지 미국에서 가장 기괴한 아동 살인사건.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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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회 이슈 TALK의 펠리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정보는요.

미국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제 살인사건.

알파벳 살인사건입니다. 어떤 사건인지 지금 당장 파고들겠습니다.



알파벳 살인사건은 미국 뉴욕 주 먼로카운티의 로체스터에서 벌어집니다.

1970년대 인구수가 10만 명 밖에 안됐던 이곳에서 3명의 여자아이가 실종되고.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그리고 가장 기괴하고 미스테리로 남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첫 번째 희생자 카르멘 콜론 (Carmen Colon)



1971년 11월 16일 로체스터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던 10살의 여자아이였습니다.

마을 근처 약국에 들렀던 걸 마지막으로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실종 이틀 후 1971년 11월 18일 9km 즈음 떨어진 처치 빌(Churcville)의 수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사망원인은 폭행과 맨손에 의한 교살이었습니다.

경찰은 바로 수사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카르멘 콜론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 한 경찰관이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 C야 피해자의 이름 Carmen Colon 그리고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Churchvile이야 모두 C가 들어가! "







정말 그의 말대로 전부 C가 들어갔지만 경찰관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며 비웃었습니다.

카르멘 콜론 경찰 조사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습니다. 증거도 목격자도 없이요.

 그렇게 시간이 1년이 훌쩍 넘습니다.



두 번째 희생자 완다 워커 위즈(WandWalkowicz)



1973년 4월 2일 로체스터에 살던 11살짜리 여자아이 완다는

모친이 일하던 슈퍼마켓에서 마지막으로 

첫 번째 희생자 카르멘 때와 똑같이 감쪽같이 실종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1973년 4월 3일.








마지막으로 완다가 실종된 위치에서 11km 떨어진 

웹스터(Webster) 주립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시신이 발견됩니다. 

사망의 원인은 폭행, 강간, 벨트로 인한 교살입니다.

첫 번째 희생자 카르멘과 범행 수법이 똑같았고 이번엔 피해자 이름이

Wand Walkoicz이고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Webster로 W자로 통일됩니다.

하지만, 경찰은 어떠한 증거도 어떠한 목격자로 찾지 못하고 또 다시 사건의 진전이 없게 됩니다.



세 번째 희생자 미셸 마엔자(Michelle Maenza)



1973년 11월 26일 로체스터 살던 11살 여자아이 미셸 마엔자가

마을 피자가게에서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또 다시 한번 감쪽같이 실종됩니다.

그렇게 이틀 후, 1973년 11월 28일 미셸의 시신은 마지막으로 실종된 부근에서








24km쯤 떨어진 곳 메이스던(Macedon)에서 시신이 발견됩니다.

망의 원인은 폭행. 강간. 교살 그리고 여러분도 눈치챘겠지만 이번엔 " M "입니다.

이번 미셸 마엔자 살인사건도 어떠한 증거도 어떠한 목격자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2년 안에 3명의 여자아이가 실종, 살인되었습니다.

여기서 경찰들이 찾아낸 사건의 공통점이라곤

살해된 아이들의 이름과 시신이 발견된 장소의 알파벳 스펠링이 일치한다는 것.

그리고 범인은 소아성애자라는 것. 범인은 차량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피해자 여자아이의 공통점에는 스펠링이 일치한다는 것 빼고도

3명 모두 다 가톨릭 신자였고 가정형편이 안 좋아 학교를 다니는 데 문제가 있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거다. 이렇게 알파벳 사건으로 불리게 되고

경찰은 뚜렷한 증거나 목격자도 없기 때문에 용의자로만 수백명을 조사했지만

범인을 알아내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그렇게 알파벳 사건은 완전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점은 왜? 범인은 3명만 죽였냐는 거죠.

그리고 분명 알파벳을 본인이 정했을 겁니다. 알파벳 살인사건 살인 순서는C->W->M입니다.

CWM은 범인이 직접 생각하고 고른 스펠링인데 혹시 이 CWM의 의미가

" Come With Me " 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에서 가장 기괴한 알파벳 살인사건을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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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회 이슈에다글을 쓰는 펠리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정보는요 " 영원한 범죄는 없다. "

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영원한 범죄가 일어났는데요.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너무나도 유명한 미제 사건.

일본 3억엔 사건입니다. 너무나도 기이하고 유명해서

소설책,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도 쓰이는 3억엔 사건이 무엇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1. 3억엔 사건의 시작


1968년 12월 6일 일본의 은행 지점장에게 한 장의 협박편지가 도착합니다.
협박편지의 내용은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지정된 장소로 여자 은행원이 300만엔을 들고 와라.
이를 어길 시 지점장의 은행을 폭발시켜 버리겠다는 협박편지였습니다.
이에 은행 측에서 바로 경찰에 신고 해당 날에 시키는 요구대로 실천했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음

이 협박편지 사건을 일본 경찰은 단순한 장난질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감.
하지만 은행 직원들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4일 후 1968년 12월 10일 은행 직원들의 보너스가 있는 날이라.
검은색 차량에 3억 엔(현금으로 30억 정도) 을 실은 현금수송차량이 오는 날.

은행 직원 간부와 직원이 총 4명이 현금수송차량에 타있었다고 합니다.
현금수송차량 이동 중에 경찰 오토바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차를 세웁니다.

그리고 오토바이가 하는 말이 은행 지점의 집이 폭발했고 지금 이 차량에도 폭탄이 있을 수 있으니
확인을 해야겠다고 합니다. 현금수송차량에 타있던 모든 직원들이 내렸고 

그때 차 트렁크에서 연기가 갑자기 쏟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경찰 오토바이는 " 피해!! 폭탄이야 모두 도망쳐!!! "라고 소리쳤고 직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경찰 오토 바이는 현금수송차량에 탑승 후 3억엔을 훔치고 도주합니다. 연기가 나는 건 연막탄 이였고.
경찰 오토바이는 원래 일본의 경찰 오토바이는 H사에서만 만들지만 그 오토 바이든 Y사 거였고. 가짜였다는 걸.
직원들이 늦게 눈치를 챘습니다. 직원들은 그 용감한 경찰이 인명피해를 없애기 위해 

차를 끌고 멀리 떨어지는 거라 생각했답니다.
이렇게 3억엔은 강탈당했고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범인을 찾지 못하고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습니다.




2. 왜? 범인을 잡지 못했는가?

첫 번째 이유는 몽타주 때문입니다.
그 사건 현장 당시에 4명의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경찰들은 바로 몽타주를 만들었죠.
위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목격자들의 진술로 만들어진 몽타주입니다.
하지만 이 몽타주가 잘못된 범인의 몽타주였습니다. 경찰들은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몽타주를 만들었지만 어느 한 소년이 범인으로 의심되자 그 소년의 사진으로 몽타주와 배경을 만든 겁니다..
경찰이 현장 목격자들에게 그 소년의사진을 보여주고 직언들에게 묻자 현장 목격자들은 의견이 전부 달랐지만.
분위기에 그런 더 같다고 대답했고 결국 잘못된 몽타주가 뿌려지게 됩니다.







두번째 이유는 경찰의 자만심과 초기 대응 미흡 입니다.

경찰들은 너무나도 자신만만했던 거죠. 이 범인 무조건 잡을 수 있다고.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증거가 일단 너무 많았고 현장에 목격자가 4명이나 있었으니까요.
버려진 오토바이 버려진 현금수송차량에다가 갈아입은 옷 버려진 옷 버려진 돈 가방 등등.
증거도 많고 목격자도 많으니까 반드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초기 대응이 미흡했습니다.
버려진 옷과 가방 오토바이를 추적해서 구 매지를 알아내서 

판매자에게 구매자를 조사해서 범인의 증거를 찾으려 했지만.
단체로 다량으로 생산된 물품들밖에 없어서 구매자를 찾는 것 또한 힘들었고. 

증거를 제대로 보존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장 목격자들도 하필 사건 날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는데 거세게 내리는 비 와.
범인이 꾹 눌러쓴 모자 위급한 상황으로 얼굴과 신체의 특징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떠한 단서도 증거도 범인도 찾지 못하게 되고 1975년 

공소시효가 끝나면서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마무리됩니다.




3. 3억 사건 그 후

3억엔 사건은 공소시효가 끝났고 현재 지금까지도 범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경찰 측에서는
당시 도난당한 3억엔의 지폐의 일련번호를 공개했지만 

공소시효가 끝난 현재까지 그 지폐가 쓰인 적은한 번도 없습니다. 






범인은 그 3억 엔을어떻게 한 것일까요?
3억엔 사건 그 후 3억엔 사건을 모방하는 모방 범죄까지 일어나고 

소설. 미디어. 영화. 드라마. 만화 등등 소재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선 3억엔 사건이란 드라마가 제작되었고 영화로는 첫사랑이란 이름으로 스토리를 다뤘습니다.
이렇게 일본의 전실 된 미제 사건 3억엔 사건을 소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펠리와만쥬 펠리&만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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