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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회 이슈 TALK의 펠리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정보는요 장기 미제 실종사건

실종된 송혜희양을 찾아주세요란 이름으로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사회 이슈가 

장기 실종 사건 그리고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아버린 송혜희 실종사건을 알아보겠습니다.







송혜희 실종사건

사건의 시작은 1992년 2월 13일 밤 10시경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 마을에서 일어납니다.

당시 송혜희양은 고등학교 3학년 이였고 송혜희양은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시내버스를 탔고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그대로 행방불명 실종되버렸다 이 송혜희양 실종사건은

대한민국 미제 사건 중 하나이고 미제 실종사건이다 송혜희양은 실종 당시 오후 5시 30분경 하교 후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송탄동 서정리에 갔습니다 송혜희양은 정신없이 남자친구 집에서 

친구들과 놀았고 막차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버스를 타고 집에 갑니다 여기서 친구들은 송혜희양이

막차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확인했고 배웅까지 해준 상태였습니다 참고로 송혜희양집이랑 당시

송혜희양 남자친구 집은 5km 정도 거리입니다 버스를 타면은 10~20분 거리에 멀지 않은 시간이죠


당시 막차 버스를 탄 송혜희양은 막차 버스 안에 송혜희양과 술에 취한 거 같은 30대로 보이는 남자

단둘이 버스에 타있었다고 하고 그리고 밤 10시 15분경 송혜희양은 도일동 하리리 입구 도일 주유소

에서 내렸고 이때 30대 남자도 같이 내립니다 그리고 이 내린 버스정류장에서 송혜희양의 집 거리는

1km여서 좀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집으로 가는 길은 논밭, 야산뿐 그리고 어두운 골목길이 

송혜희양의 집으로 가는 빠른 지름길이었다송혜희양은 앞에서 먼저 걸어가고 30대 남자는 뒤에서

같이 걸어갑니다 그리고 이것이 송혜희양의마지막 모습이었고 송혜희양은 이후로 영원히 사라집니다.








송혜희양의 아버지는 송혜희양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송혜희양이 집에 안 들어온다고 물어봤고

친구들은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승혜의 양의아버지는 새벽


6시경 가족들과 경찰에 신고했고 처음에 단순 가출로 여겼던 경찰들은 3일 후에서야 본격적인 수사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경찰들은 아무런 조사 끝에도 송혜희양 실종과 관련된 무엇도 알아낼 수 없었죠

하지만 여러분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송혜희양의 마지막 모습을 본 사람은누구일까요? 바로

버스기사입니다 버스기사의 말에 따르면 송혜희양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30대 남성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나이는 30대 정도 돼 보였고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신발은

등산화를 신었다 얼굴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고 버스기사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30대 남성에게 어디 가냐 물어보니까 도일동 하리 부락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몸에서

술 냄새가 많이 났으며 버스에서 내린 후 도로를 건너지 않고 지하도를 향했다는 진술이 전부입니다.


경찰은 이 30대 남성을 찾기 위해서 주변을 샅샅이 찾았다 심지어 성매매 업소까지 수색했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로 찾지 못했고 아직도 그 30대 남성을 찾을 수 없으며 2014년 2월 공소시효가 끝납니다.






송혜희양 실종사건 그 후

송혜희양은 하교에서 전교 1~2등을 항상 할 정도로 영특했고 국회의원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송혜희양의 부모님은 자영업을 했는데 부모님은 송혜희양을 찾기

위해서 살아생전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송혜희양을 찾는 데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죠

하지만 송혜희양이 실종되고 송혜희양의 어머니는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으로 괴로워하시다가

결국엔 농약 자살을 선택하고 맙니다 그리고 송혜희양에겐 언니가 있는데 송혜희양의 언니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서 아버지를 모시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송혜희양의 아버지는 아직도

딸의 방을 당시 그대로 해두고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럭을 송혜희양의 사진으로

도배하고 전국을 돌면서 아직도 송혜희양을찾고 있습니다 실종 전단지를 뿌리면서 말이죠


송혜희양을 봤다는 제보전화가 오면은 아버지는 전국 어디든 바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하거나 대부분 장난전화입니다 현재 일을 그만두고 전단지와 현수막을

만드느라 많은 빚을 지고 있어서 현재는 신용불량자라고 합니다 저 또한 운전을 하면서 가다가

실제로 송혜희양을 찾는 현수막을 서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평택에 사시는 분들은 대부분

송혜희양을 찾는 전단지를 봤다고 합니다 2004년 KBS에서 공개수사도 했었고 2011년 채널 뷰

사라진 가족들이라는 프로에 아버지는 방송 출연까지 하면서 찾으려 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끝가지 포기하지 않으며 자기 딸은 살아있을 거란 믿음으로 아직도 전국

방방곡곡에 실종된 송혜희양좀 찾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을 걸고 다니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현재 송혜희양이 살아있으면 한국 나이로 30후반이고 송헤희양 아버지는 메르스 사태 발생 시

메르스에 걸렸지만 완치했다 딸을 찾겠다는 의지로 이겨냈고 합니다 그리고 송혜희양 실종사건

3년 후 송혜희양이 실종된 버스 종점에서 부녀자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찰들과 프로파일러들은 현재 이 사건과 송혜희양 실종사건의 범인이 공범을 가능성을 두고 있고

그리고 2004년에 벌어진 화성 여대생 사건 또한 이 3사건의 사건과 수법이 매우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범인이 같은 사람일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도 송혜희양의 아버지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찾고 있습니다 평택에서 실종된 평택 송혜희양을 찾는 희망을 절대 버리지 않고 다시

한번 가족들이 만나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기도합니다 대한민국 미제 사건이 자 미제 실종사건

송혜희양을 찾습니다 이상 펠리와만쥬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실종사건 전화는

국번 없이 112이고 문자상담은 #0182, 평택 경찰서 031) 651~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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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회 이슈 TALK의 펠리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정보는요.

무섭고 섬뜩한 이야기인데요.

미국 국민 중에서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강호순 사건 같은 매우 유명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기괴하고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드는.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존 베넷 램지입니다.

매우 이쁘게 생겼죠?

이 아이는 집에 방이 무려 15개나 있는 부유한 집안의 딸입니다.

존 베넷의 어머니 또한 뛰어난 외모를 가졌고.

램지 또한 엄마의 뛰어난 외모를 물려받아 엄청 이쁘게 생겼죠.

엄청난 자산가의 딸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태어난 딸.

일명 금수저라 불리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은.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 불리며.


미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아동 살인사건의 남게 됩니다.








199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이웃집 부부의 자택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 다녀오는 램지 가족.

모든 파티가 끝나고 자기 자신의 집에 존 베넷 램지.

램지는 지쳐서 잠들었고 지쳐서 잠든 램지를 아빠가 안아서.

램지의 방안에 들어가 램지의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 나옵니다.

이것이 존 베넷 램지의 마지막 모습이 됩니다.

다음날 아침 자택 계단에서 한 장의협박문이 떨어져 있었고.

존 베넷 램지는 실종됩니다.




협박 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외국인 소규모 집단입니다.

당신의 딸을 납치했습니다.

딸을 무사히 돌려받고 싶으면 11만 8천 달러의 금액을 준비해라.

돈의 전달 방법은 다음날 오전 8시~오전 10시 사이에 전화로 알려주겠다.

만약 FBI나 경찰에 신고할 시 딸의 목을 잘라버릴 것이다.

돈이나 돈 가방에 위치 추적장치를 달아도 딸은 죽을 것이다.

우리는 국가 수사관의 수사 진행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이 편지를 본 부부는 무서웠지만 그래도 경찰에 신고했고.

편지에 지문이나 어떠한 증거도 남아있지 않아서.

경찰들 또한 협박 문의 내용대로 전화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경찰은 평소 조사하지 않았던 집안을 구석구석 조사하다가.

경찰 과 램지의 아버지가 집 지하실에서 램지가 평상시 아끼던.

하얀색 담요에 덮인 채 입에는 강력접착제가 붙어있고.

두개골에는 금이 간 상태, 얼굴은 구타를 심하게 당해 멍이 들었고.

나일론 끈으로 목이 심하게 쪼여서 목이 쪼그라질 정도의 상태.

손에는 하트 모양 무늬가 그려져있는 끔찍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은 수상한 점이한두 개가 아닙니다.


협박문은 존 베넷 램지의 집 볼펜으로썼습니다.

게다가 밤이어서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집안의 손전등까지 이용했습니다.

램지의 시체는 집안 지하실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가짜 협박문을 만들어놨을까요?








그리고 보통 범인이 계획하고 집에 들어온 거라면.

손전등을 챙겨서 들어오는 게 상식적인데.

집안의 볼펜과 손전등을 이용했습니다.

자칫하다가 증거가 남을 텐데 무슨 이유였을까요?

심지어 존 베넷 램지 집의 손전등은 건전지가 없었는데.

범인은 이 건전지를 챙겨 온 걸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램지가 사망한 당시에 눈이 정말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존 베넷 램지 집안에서 마당에서 그 어떤 곳에서도.

외부인의 출입이 전혀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눈이 오는 날이면 어떠한 증거라도 남아야 하는데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협박문에 11만 8천 달러를 챙겨오란 협박문이 있었는데.

이 금액은 램지 아빠의 회사 보너스 금액이랑 정확히 일치합니다.


존 베넷 램지 집안은 엄청난 부자집인데 왜 굳이 11만 8천 분을 요구했을까요?

그리고 램지의 시신에서 램지가 엄청나게 저항한 흔적이 나옵니다.

왜 굳이 범인은 램지를 납치한 게 아니라 집안에서 살해했을까요?

램지가 저항하거나 소리치면 들켰을 확률이 엄청 높았는데요.


그리고 범인은 램지의 손에다 하트 무늬 모양을 그리고 나갔는데요.

미국에서 어린아이 손에다 하트 무늬 모양을 해놓는 건.

소아 성애자들만 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는 가족들로 주목됐습니다.

그 이유는 외부인의 출입 흔적이 전혀 없었고.

범인의 램지 집안의 물건을 이용해서 편지를 쓰고 증거를 남긴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램지의 아버지는 램지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램지의 어머니는 램지의 미모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살인했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다행히 램지의 시신에서 램지의 손톱과 램지의 속옷에서.

범인이 남긴 DNA가 발견됩니다.








하지만 1996년에는 DNA를 가지고 범인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의 증거 또한찾아낼 수 없었고.

2003년이 돼서야 DNA를 대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생겨납니다.

가족들은 7년 동안이나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살았고.

2003년 DNA를 비교해서 존 베넷 램지 가족들이 범인이 아니란 걸 밝혀냅니다.


그리고 이 램지가 남긴 DNA에 일치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고.

이 사건은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미국 전역의 국민들은 존 베넷 램지를 너무 불쌍하게 생각했고.

존 베넷 램지를 추모하고 그의 명복을 전 미국 국민들이 추모했습니다.

하루빨리 범인이 잡혀서 마땅한 죗값을 치렀으면 합니다.

이상 여기까지 미국에서 가장 기괴한 아동 살인사건.

존 베넷 램지 살인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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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회 이슈 TALK의 펠리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정보는요.

미국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제 살인사건.

알파벳 살인사건입니다. 어떤 사건인지 지금 당장 파고들겠습니다.



알파벳 살인사건은 미국 뉴욕 주 먼로카운티의 로체스터에서 벌어집니다.

1970년대 인구수가 10만 명 밖에 안됐던 이곳에서 3명의 여자아이가 실종되고.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그리고 가장 기괴하고 미스테리로 남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첫 번째 희생자 카르멘 콜론 (Carmen Colon)



1971년 11월 16일 로체스터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던 10살의 여자아이였습니다.

마을 근처 약국에 들렀던 걸 마지막으로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실종 이틀 후 1971년 11월 18일 9km 즈음 떨어진 처치 빌(Churcville)의 수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사망원인은 폭행과 맨손에 의한 교살이었습니다.

경찰은 바로 수사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카르멘 콜론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 한 경찰관이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 C야 피해자의 이름 Carmen Colon 그리고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Churchvile이야 모두 C가 들어가! "







정말 그의 말대로 전부 C가 들어갔지만 경찰관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며 비웃었습니다.

카르멘 콜론 경찰 조사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습니다. 증거도 목격자도 없이요.

 그렇게 시간이 1년이 훌쩍 넘습니다.



두 번째 희생자 완다 워커 위즈(WandWalkowicz)



1973년 4월 2일 로체스터에 살던 11살짜리 여자아이 완다는

모친이 일하던 슈퍼마켓에서 마지막으로 

첫 번째 희생자 카르멘 때와 똑같이 감쪽같이 실종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1973년 4월 3일.








마지막으로 완다가 실종된 위치에서 11km 떨어진 

웹스터(Webster) 주립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시신이 발견됩니다. 

사망의 원인은 폭행, 강간, 벨트로 인한 교살입니다.

첫 번째 희생자 카르멘과 범행 수법이 똑같았고 이번엔 피해자 이름이

Wand Walkoicz이고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Webster로 W자로 통일됩니다.

하지만, 경찰은 어떠한 증거도 어떠한 목격자로 찾지 못하고 또 다시 사건의 진전이 없게 됩니다.



세 번째 희생자 미셸 마엔자(Michelle Maenza)



1973년 11월 26일 로체스터 살던 11살 여자아이 미셸 마엔자가

마을 피자가게에서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또 다시 한번 감쪽같이 실종됩니다.

그렇게 이틀 후, 1973년 11월 28일 미셸의 시신은 마지막으로 실종된 부근에서








24km쯤 떨어진 곳 메이스던(Macedon)에서 시신이 발견됩니다.

망의 원인은 폭행. 강간. 교살 그리고 여러분도 눈치챘겠지만 이번엔 " M "입니다.

이번 미셸 마엔자 살인사건도 어떠한 증거도 어떠한 목격자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2년 안에 3명의 여자아이가 실종, 살인되었습니다.

여기서 경찰들이 찾아낸 사건의 공통점이라곤

살해된 아이들의 이름과 시신이 발견된 장소의 알파벳 스펠링이 일치한다는 것.

그리고 범인은 소아성애자라는 것. 범인은 차량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피해자 여자아이의 공통점에는 스펠링이 일치한다는 것 빼고도

3명 모두 다 가톨릭 신자였고 가정형편이 안 좋아 학교를 다니는 데 문제가 있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거다. 이렇게 알파벳 사건으로 불리게 되고

경찰은 뚜렷한 증거나 목격자도 없기 때문에 용의자로만 수백명을 조사했지만

범인을 알아내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그렇게 알파벳 사건은 완전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점은 왜? 범인은 3명만 죽였냐는 거죠.

그리고 분명 알파벳을 본인이 정했을 겁니다. 알파벳 살인사건 살인 순서는C->W->M입니다.

CWM은 범인이 직접 생각하고 고른 스펠링인데 혹시 이 CWM의 의미가

" Come With Me " 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에서 가장 기괴한 알파벳 살인사건을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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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회 이슈 TALK의 펠리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정보는요, 미국 최악의 연쇄살인 미제 사건 조디악 킬러 사건입니다.

현재 지금까지도 범인이 잡히지 않았고 이 사건 땜에 9개월 동안 샌프란시스코 국민들이.

밤에 불안을 떨어야 했던 사건입니다.어떤 사건인지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1. 조디악 킬러의 시작.

조디악 킬러 사건의 시작은 1968년 12월 20일로 시작됩니다.

미국 베니 샷 시 외각의 허먼 로드 호수에서 데이트를 하던 커플이 살해된 체 발견됩니다.

곧바로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약 6개월 후인 1969년 7월 4일 벌레 이오 외각의 블루로 골프장의 주차장에서.

한 커플이 총 2발을 맞고 사망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경찰한테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의 내용은.








방금 블루락 골프장에서 한 커플을 내가 쏴 죽였다.

작년 12월 허먼 로드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도 내가 저지른 거다.

너희들은 절대로 날 잡을 수 없다.





2. 조디악 킬러라 부르게 된 계기

1969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의 지역신문사에 하나 자필로 이루어진 편지가 온다.

하지만 그 편지는 이상한 암호문으로 이루어진 정체불명의 편지였다.

이 편지는 FBI와 미국정부가 풀지 못한 암호 중에 TOP10에 든다. )

영어로 써진 알아볼 수 있는 말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난 작년 12월 허먼 로드의 살인마다, 이 편지를 신문 1면에 올려라 안 그러면 주말마다.

12명의 사람들을 연속적으로 잔인하게 살해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암호를 풀면 나를 잡는데아주 유용한 정보다 될 것이다.


이렇게 신문사들은 조디악의 요구대로 신문 1면에 편지와 암호문을 공개했다.

일주일 후 캘리포니아의 한 교사 부부의 도움으로 암호를 풀었다.

리고 이 암호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독한 문장이다, 암호문의 내용은 이렇다.








난 사람을 죽이는 게 너무나도 즐거워, 숲에서 동물을 사냥하는 것보다훨씬 재미있지.

인간은 가장 위험한 동물이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섹스를 하는 것보다훨씬 쾌락 있고 스릴이 있어.

살인의 장점은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가면 내가 죽인 사람들을 노예로 부릴 수 있다는 거야.

내 이름을 가르쳐 줄 순 없어, 그랬다간 내 노예 &*$@#$(해독 불가) 노예 수집을 방해할 테니까.


그렇게 1969년 8월 7일 샌프란시스코 신문사로 또 다른 편지가 도착한다. 다른 암호로 동봉되어 있었으며.

편지에서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은 이 문장 밖에 없었다 이 문장으로 조디악 킬러라는 별명이 붙혀졌다.

" 조디악 가라사대 ( This is The Zodiac Speaking) "




3. 조디악 킬러의 몽타주와 미제로 남은 사건


조디악 킬러는 경찰을 조롱하는 말투로 편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이 조디악의 몽타주가 완성되는 계기가 생겨냈다.

1968년 92월 27일 나파 카운티의 베레사 호수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한 커플이 난데없이.

괴상한 문양의 두건을 쓴 괴한이 나타나 총으로 위협하고 둘을 결박하고 여자를 칼로 10번 난자했고.








남자는 6번 난자했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극사했고 남자는 칼에 6번이나찔렸지만 가까스로 도주해 살아남는다.

그리고, 10월 11일 샌프란시스코 프락시 디오 하이츠 택시기사가 정차 중에 총에 맞아 사망한다.

이것이 조디악 킬러가 관여한 마지막 살인으로 추정된다, 나파 카운티의 베레사 호수 사건의 생존자와.

택시기사 살인사건에서 10대 청소년들의 목격자로 조디악 킬러의 몽타주가 완성된다.


위에 보이는 사진이 조디악 킬러의 몽타주이다, 그리고 조디악 킬러는 택시기사 살해한 후.

택시기사의 와이셔츠를 찢어갔었고. 샌프란 시스코 신문사에 택시기사의 와이셔츠를 편지와 같이 보냈다.

이후 조디악 킬러는 신문사에 버스 테러 편지까지 보냈고, 샌프란시스코에 모든 버스가 중지되었다.

하지만 버스 테러는 이러나 지 않았고 조디악 킬러는 이렇게 행방을 감추었다. 

조디악 킬러의 유력한 용의자로 잡힌 사람 또한 DNA검사 결과 불일치로 나왔고.

조디악 킬러의 암호문 또한 아직까지도 풀지 못했고 현재 지금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미국 최악의 연쇄살인 미제 사건으로마무리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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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회 이슈에다글을 쓰는 펠리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정보는요 " 영원한 범죄는 없다. "

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영원한 범죄가 일어났는데요.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너무나도 유명한 미제 사건.

일본 3억엔 사건입니다. 너무나도 기이하고 유명해서

소설책,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도 쓰이는 3억엔 사건이 무엇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1. 3억엔 사건의 시작


1968년 12월 6일 일본의 은행 지점장에게 한 장의 협박편지가 도착합니다.
협박편지의 내용은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지정된 장소로 여자 은행원이 300만엔을 들고 와라.
이를 어길 시 지점장의 은행을 폭발시켜 버리겠다는 협박편지였습니다.
이에 은행 측에서 바로 경찰에 신고 해당 날에 시키는 요구대로 실천했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음

이 협박편지 사건을 일본 경찰은 단순한 장난질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감.
하지만 은행 직원들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4일 후 1968년 12월 10일 은행 직원들의 보너스가 있는 날이라.
검은색 차량에 3억 엔(현금으로 30억 정도) 을 실은 현금수송차량이 오는 날.

은행 직원 간부와 직원이 총 4명이 현금수송차량에 타있었다고 합니다.
현금수송차량 이동 중에 경찰 오토바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차를 세웁니다.

그리고 오토바이가 하는 말이 은행 지점의 집이 폭발했고 지금 이 차량에도 폭탄이 있을 수 있으니
확인을 해야겠다고 합니다. 현금수송차량에 타있던 모든 직원들이 내렸고 

그때 차 트렁크에서 연기가 갑자기 쏟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경찰 오토바이는 " 피해!! 폭탄이야 모두 도망쳐!!! "라고 소리쳤고 직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경찰 오토 바이는 현금수송차량에 탑승 후 3억엔을 훔치고 도주합니다. 연기가 나는 건 연막탄 이였고.
경찰 오토바이는 원래 일본의 경찰 오토바이는 H사에서만 만들지만 그 오토 바이든 Y사 거였고. 가짜였다는 걸.
직원들이 늦게 눈치를 챘습니다. 직원들은 그 용감한 경찰이 인명피해를 없애기 위해 

차를 끌고 멀리 떨어지는 거라 생각했답니다.
이렇게 3억엔은 강탈당했고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범인을 찾지 못하고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습니다.




2. 왜? 범인을 잡지 못했는가?

첫 번째 이유는 몽타주 때문입니다.
그 사건 현장 당시에 4명의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경찰들은 바로 몽타주를 만들었죠.
위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목격자들의 진술로 만들어진 몽타주입니다.
하지만 이 몽타주가 잘못된 범인의 몽타주였습니다. 경찰들은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몽타주를 만들었지만 어느 한 소년이 범인으로 의심되자 그 소년의 사진으로 몽타주와 배경을 만든 겁니다..
경찰이 현장 목격자들에게 그 소년의사진을 보여주고 직언들에게 묻자 현장 목격자들은 의견이 전부 달랐지만.
분위기에 그런 더 같다고 대답했고 결국 잘못된 몽타주가 뿌려지게 됩니다.







두번째 이유는 경찰의 자만심과 초기 대응 미흡 입니다.

경찰들은 너무나도 자신만만했던 거죠. 이 범인 무조건 잡을 수 있다고.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증거가 일단 너무 많았고 현장에 목격자가 4명이나 있었으니까요.
버려진 오토바이 버려진 현금수송차량에다가 갈아입은 옷 버려진 옷 버려진 돈 가방 등등.
증거도 많고 목격자도 많으니까 반드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초기 대응이 미흡했습니다.
버려진 옷과 가방 오토바이를 추적해서 구 매지를 알아내서 

판매자에게 구매자를 조사해서 범인의 증거를 찾으려 했지만.
단체로 다량으로 생산된 물품들밖에 없어서 구매자를 찾는 것 또한 힘들었고. 

증거를 제대로 보존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장 목격자들도 하필 사건 날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는데 거세게 내리는 비 와.
범인이 꾹 눌러쓴 모자 위급한 상황으로 얼굴과 신체의 특징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떠한 단서도 증거도 범인도 찾지 못하게 되고 1975년 

공소시효가 끝나면서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마무리됩니다.




3. 3억 사건 그 후

3억엔 사건은 공소시효가 끝났고 현재 지금까지도 범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경찰 측에서는
당시 도난당한 3억엔의 지폐의 일련번호를 공개했지만 

공소시효가 끝난 현재까지 그 지폐가 쓰인 적은한 번도 없습니다. 






범인은 그 3억 엔을어떻게 한 것일까요?
3억엔 사건 그 후 3억엔 사건을 모방하는 모방 범죄까지 일어나고 

소설. 미디어. 영화. 드라마. 만화 등등 소재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선 3억엔 사건이란 드라마가 제작되었고 영화로는 첫사랑이란 이름으로 스토리를 다뤘습니다.
이렇게 일본의 전실 된 미제 사건 3억엔 사건을 소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펠리와만쥬 펠리&만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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